[안상목 회계칼럼] 재정적자와 성장주의(Growt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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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 회계칼럼] 재정적자와 성장주의(Growt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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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예산적자는 주로 의료, 복지, 국방 등 세 분야에서 온다. 그러한 항목들을 줄이려 해도 쉽게 줄어들지 않지만, 줄이고 싶지도 않게 만드는 그 어떤 사고방식이 경제학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성장주의(Growthism), 즉 GDP 성장률이 높을수록 좋고 낮을수록 나쁘다는 사고방식이다. 성장주의를 다음 두 가지 정신으로 요약해 본다. GDP 성장률은 높을수록 좋다. 실업률은 낮을수록 좋다. 한 국가의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은 작년에 비하여 금년의 GDP가 더 크다는 뜻이다. 그것은 반드시 작년보다 금년이 더 부유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부유해졌다 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늘어나야 하고, 자본은 추가의 저축 또는 자산 가치의 증가에 의하여 늘어난다.  대단히 가난한 국가는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 전까지는 GDP가 해마다 늘어나도 수입이 생기는 족족 써버려야 하니 자본이 형성되지 않는다. 로스토우(Rostow)라는 사람의 경제개발 5단계설에 나오는 제2단계, 즉 도약을 위한 선행조건 단계(The preconditions for take-off)의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는 낮은 단계의 물적 자본 형성이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공장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그 이전은 GDP가 늘어나도 손에서 입으로 모두 소모된다. (물적 자본 형성 이전에 인간자본이 자라지만, 인간자본은 GDP에 계산되지 않는다.)  일단 자본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GDP가 성장하지 않아도 일정 부분은 저축된다. 먹고 쓰고 남을 만큼 생산하는 국가는 GDP가 줄어들어도 점점 부유해진다. 일본이 20년 또는 30년을 잃어버렸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가난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소득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30년 동안 일본인은 계속 저축했고, 따라서 계속 부유해졌다.  현대의 경제학에서는 저축이라는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 자세히 보면 저축이라는 말과 투자라는 말은 각각 여러 가지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 앞의 세 문단에서 논한 저축은, 칼럼 442호(저축과 투자가 같아지는 모델)에서 투자와 저축의 금액이 동일하게 되는 그 저축이다. 그러나, 칼럼 442호의 표현 방식은 경제학에서 정립된 것도 아니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다만, 현존 경제학의 혼란을 제거하는 시초였을 뿐이다. 저축의 정체를 알아내고 모든 경제학자가 그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노력과 행운이 필요하다.  저축이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정자의 경제 성적을 저축을 통하여 매길 수 없으니, 현재로서는 (옳든 그르든) 이해하기 용이한 GDP 성장률을 통하여 위정자의 경제 성적을 매길 수밖에 없다.     좋은 GDP 성적을 위해서는 때때로 재정적자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1억 불의 국채를 발행하여 확보한 돈으로 일부 공무원 봉급을 인상했다면, 거기서 1억 불의 국민소득이 늘어난다. 공무원들은 그냥 하던 일들을 할 뿐이고, 정부부채는 늘어났는데, 국민소득은 증가한 것이다. 그 국채를 시중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다면, 경제적으로는 시중은행들과 정부 사이에 채권채무관계가 늘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계산상으로는 난데없이 국민소득이 증가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뭔가를 구매하면 국민소득은 늘어난다. 그것을 외국으로부터 구매하면, 일단 그 외국의 소득을 높여준다. 납품하는 그 외국이 납품하는 것의 부품을 미국에서 사 간다면, 또 그만큼은 미국의 소득이 된다. 정부가 뭔가를 자국에서만 구매해도, 자국의 생산자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그 무엇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한다면, 그 수입만큼은 자국 아닌 외국의 소득을 높여준다. 앞 문단의 경우처럼 아무 것도 구매하지 않고 순수히 자국인의 봉급소득만 높여주는 경우에도, 그 증가된 소득의 일부는 외국 물건의 수입에 사용된다. 올라간 봉급을 가지고 외제 자동차를 사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결국, 모든 종류의 정부 구매는 정부부채를 늘여주는 한편 늘어나는 정부부채보다는 작은 금액만큼 자국의 소득을 높여준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는 100억 불의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무슨 짓을 할 때마다 85억 불 가량의 GDP를 높인다고 표현할 수 있다. 추가의 100억 불이 실질적 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못할 경우는 허다하다. 예를 들면, 아직 쓸만한 군용차량을 처분하고 신품 차량으로 교체하는 것 따위의 낭비적 지출을 해도 국민소득은 증가한다. 위정자의 성적표에 GDP성장률의 비중은 높고 재정적자의 비중은 낮다. 그러므로, 위정자는 때때로 경제 성적표를 잘 받기 위해서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파급효과’를 생각할 것이다. 자동차가 팔리면 자동차 업계 종사자들은 거기서 나온 소득으로 소비를 일으키고 거기서 또 새로운 소득이 생겨난다 하는 생각. 그러나, 안이하게 소득을 올린 사람들은 긴장을 잃고, 경쟁력을 잃고, 새로운 것을 개발할 에너지를 잃는다. 칼럼 445호(케인즈의 원본 투자승수)에서 본 바, 케인즈가 그 어떠한 천재라 할지라도 투자승수는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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